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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로니티스 기업, 글로벌 크로싱(Global Crossing)의 흥망

엔로니티스 기업, 글로벌 크로싱(Global Crossing)의 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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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IT기획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이번호에서는 대표적인 엔로니티스(엔론과 같은 'Enron as it is'를) 한 단어로 축약한 단어로 분식회계를 통해 실적과 주가를 조작한 기업)인 글로벌 크로싱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한 때 승승장구하며 LA에서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던 글로벌 크로싱의 게리 위닉은 추악한 분식회계로 경제사의 오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증권사 출신 게리 위닉, IT 버블의 중심에 서다

글로벌 크로싱을 세운 사람은 게리 위닉(Gary Winnick)으로 증권가 출신입니다. 그는 1980년대에드랙셀 번햄 램버트 증권사에 입사, 채권영업부 수장에 오릅니다. 드랙셀 번햄 램버트 증권사는 현재는 파산했지만 1980년대 정크본드의 황제였던 마이클 밀켄을 앞세워 높은 수익을 올리던 증권사였습니다. 마이클 밀켄은 당시 30대에 무려 140조 원 가량의 정크본드를 관리하던 사람으로 월 스트리트가 아니라 버버리힐즈에 자신의 사무실을 세우고 열정적으로 일했고 드랙셀 번햄 램버트 증권사는 날로 번창했습니다.

봉투에 달러가 들어가 있는 사진

하지만 후에 마이클 밀켄은 정크본드에서 더 나아가, LBO와 M&A에 손을 댔고 기업사냥꾼이었던 이반 보스키와 연합하여 기업 내부정보를 빼돌리고 회계를 조작하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결국 후에 뉴욕시장이 된 검사 루돌프 줄리아니에 의해 기소, 구속되며 폴른 엔젤(Fallen Angel)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마이클 밀켄과 이반 보스키의 이야기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 스트리트> 1편의 소재가 됩니다. 게리 위닉은 채권영업부로 마이클 밀켄과 연줄이 닿을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측근 중 한 명이었습니다. 후에 위닉이 일으킨 글로벌 크로싱의 회계부정이 이 때 마이클 밀켄에게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불명입니다. 어쨌든 위닉은 1985년 회사를 나와 사모 펀드(PEF)를 조직합니다.

채권맨 시절에는 잘 나갔지만 막상 PEF의 수장이 된 이후에 부동산부터 매트리스 회사까지 다양한 투자를 하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미국 통신법 개정과 인터넷의 출현에 주목하게 됩니다.

글로벌 크로싱 로고 사진

1996년 미국 정부가 통신법을 개정하며 통신 인프라 육성을 천명하자, 위닉은 이것이 당시 태동하던 인터넷 수요를 급격하게 늘릴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1997년 글로벌 크로싱을 설립한 위닉은 투자를 받아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의 소프트뱅크 등과 함께 대서양 광케이블 연결 사업을 수주합니다. 이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글로벌 크로싱을 통신업계의 기린아로 견인합니다. 위닉이 이끄는 글로벌 크로싱은 미국 5위 장거리 전화 사업체인 프론티어 코퍼레이션, 유에스 웨스트, 해저광케이블 회사인 케이블 앤 와이어리스 등을 합병하며 미국 1위의 통신사 AT&T와 견줄만한 회사로 성장합니다. 주식시장에서도 글로벌 크로싱은 단연 화제였습니다. 첫 상장 당시 9.5달러 수준이었던 주식은 2년 만에 60달러 수준으로 급등, 회사의 성장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급격한 성장, 그 중심에는....

글로벌 크로싱의 성장에는 해외케이블에 대한 기대가 숨어있었습니다. 당시 인터넷 트래픽이 급격이 증가하고, 해저케이블의 경우 음성트래픽과 달리 별도의 전환(아날로그와 디지털 간 변환) 과정 없이, 데이터를 바로 송신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해저케이블 사업이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는데 유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근저에 깔려 있었습니다.

세계지도 그림에 네트워크 사진

하지만 사실 해저케이블 사업은 이미 과포화 상태였습니다. 1998년 리먼 브라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저 광섬유 통신망의 가용 용량은 실제 사용량보다 무려 70배나 더 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경쟁은 심화되고 신규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가격 인하 압력은 커지면서 실제로 통신업은 설비 과잉과 유지로 인해 돈이 안 되는 사업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초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글로벌 크로싱을 처음으로 설치한 영국-미국-독일의 대서양 횡단케이블의 25개월 임대료 매출은 9억 달러 수준으로 설비 비용(7억 달러 수준)에 비해 마진이 남는 장사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해저 트래픽 역시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글로벌 크로싱의 해저 케이블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려면 유럽과 미국, 미국과 아시아처럼 대륙 간 인터넷 트래픽이 증가해야 했으나, 대부분의 인터넷 트래픽은 대륙, 지역 내 머물렀기에 해저 트래픽을 끌어다 쓸 이유가 적었습니다.

한편 사업의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치자 위닉은 다른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는 '네트워크 스왑(Network swap)'에 주목하게 됩니다. 네트워크 스왑이란 말 그대로 네트워크 망을 교환하는 거래를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글로벌 크로싱은 같은 네트워크 망 구축 사업에 뛰어든 엔론, 경쟁자인 월드컴 등과 거래를 시작합니다. 즉 글로벌 크로싱이 뉴욕의 한 회선을 엔론에게 빌려주면, 엔론은 보스턴에 있는 회선을 빌려주고 서로에게 어음을 씁니다. 그리고 둘의 어음을 교환하여 서로에게 매출이 발생했다고 적습니다. 이렇게 월드컴, 엔론, 글로벌 크로싱,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 등은 네트워크 스왑을 진행하며 가짜 매출을 발생시킵니다. 엔론이나 월드컴이나, 글로벌 크로싱이나 서로 주고 받는 건 어음과 회계내용이지 실제의 거래 결과로 돈을 주고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래프 사진

하지만 은행 등은 글로벌 크로싱이 실제 돈이 잡히는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믿으며 대출을 진행했고, 사람들도 글로벌 크로싱이 몰락할 것이라 의심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앞의 리먼 브라더스 역시 1998년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를 서두에 싣고도, 앞으로는 인터넷 쇼핑의 증가 등으로 인해 트래픽이 더 늘어나며 설비 과잉이 해소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글로벌 크로싱의 참담한 몰락

하지만 호형호제하던 엔론이 몰락하자 글로벌 크로싱에게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맙니다. 결국 글로벌크로싱은 처참하게 파산했고 파산신청 당일 주당 60달러를 웃돌던 주가가 41%나 폭락, 1주당 30센트 수준까지 폭락합니다.

게리 위닉은 회사를 사임했지만 파산 직전에 주식(7억 3400만 달러)을 처분함으로써 불법내부자거래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위닉은 황급히 파산으로 손해를 본 종업원(이들 역시 엔론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퇴직연금 대부분을 글로벌 크로싱에 투자했습니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사재 2,500만 달러를 출연하기도 했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뉴욕 야경 전경 사진

글로벌 크로싱이 일으킨 소요는 120억 달러의 대규모 파산 사태를 야기했습니다. 홍콩의 허치슨 암포어, 싱가포르 테크놀리지스 텔레미디어 등이 지분을 인수했으나 글로벌 크로싱이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4년 게리 위닉은 벌금으로 3억 2천 5백만 달러를 구형 받지만, 후에 5천 5백만 달러로 감형 받습니다. 이 역시 사법거래라며 크게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 때 스티븐 스필버그 등을 제치고 LA에서 최고의 부자로 널리 알려졌던 게리 위닉은 추악한 분식회계의 범인으로 경제사에 오명을 남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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