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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코스닥 열풍
(2019년 04월 기사)

2000년대 코스닥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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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04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계절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어느덧 봄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기온차가 큰 봄 날씨처럼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 역시 급격한 상승과 버블 붕괴에 의한 최대 낙폭 등을 오가며 시장의 유동성이 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봄꽃 만개하듯 피어올랐던 2000년대 코스닥 열풍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2000년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IT열풍과도 관련성이 있는 코스닥 열풍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까지 초래하며 붕괴하는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1996년 태동한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

지난 달에는 나스닥 IT버블의 시작과 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IT붐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00년대 초 IT열풍이 크게 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IT업체와 신생 벤처기업들이 주로 진입했던 코스닥 시장에서 이 열풍이 태동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를 '코스닥 버블'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코스닥 시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1986년부터 코스닥 시장 설립 논의가 있었습니다. 물론 정식 명칭이나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것은 아니고 '기존의 증권거래소 이용과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없을까'하는 수준의 논의가 당시 재무부, 지금으로 따지면 기획재정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이 논의를 바탕으로 1987년 5월 한국증권업협회(오늘날 금융투자협회) 내 주식 장외 시장이 개설됩니다.

하지만 거래소 시장과 달리 장외 시장이다 보니 여전히 자금 조달에 대한 이슈와 요구가 계속되었습니다. 이에 1996년 7월 1일, 중소·벤처 기업의 직접 금융 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코스닥 시장이 개설됩니다.

여의도 전경 사진

코스닥 시장의 성장이 본격화된 것은 1999년입니다. 지난 글에서 주로 다뤘던 1997년~19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1996년 개장 이후 1년만에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증시가 폭락합니다. 처음 1,000대의 지수로 시작해 1,200~1,300까지 상승했던 코스닥은 폭락해서 800대~900대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1999년 3월 24일부터 코스닥의 대세 상승장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왜 갑자기 코스닥 시장이 상승했는지 의문을 품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먼저 미국 나스닥 시장의 90년대 상승장이 미국의 통신법 개정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IT벤처 기업 육성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상승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뎀 사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9년 5월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이 발표됩니다. 여기서는 코스닥 시장과 거래소 간의 차별화가 언급되었고, 등록요건이 완화되며 대형 통신서비스 업체들이 쉽게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코스닥에 등록한 중소·벤처 기업의 경우에는 세제 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금리와 경기 부양으로 공급된 유동성도 한 몫

두 번째로는 저금리 상황과 경기 부양 정책으로 인해 시장에 풀린 돈이 코스닥 시장으로 유입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새롭게 바뀐 김대중 정부에서는 금융위기 극복과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합니다. 애초 IMF는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를 강조하며 외국 채권은행의 자금 회수를 촉진했으나 고금리로 인해 자금 지원에도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이 급증하자 입장을 선회합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는 1998년 5월 이후부터 경기 회복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작했고 이는 기업들의 숨통을 다시 터주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그 당시 금리인하를 보면 1998년 4월 우리나라의 수신금리는 13%대에 달했으나 이후 1999년 1월에는 무려 절반인 6%대로 크게 감소하며, 일관적인 저금리 정책이 시행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금리는 현재 1% 수준으로, 저금리 추세는 199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습니다.

주식 정보 사진

당시 코스닥 외에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등 저금리 정책의 단점이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한편 늘어난 유동성은 코스닥 시장에 영향을 미쳐 코스닥 시장이 크게 흥하는 계기가 됩니다.

아울러 미국 나스닥의 IT버블도 코스닥 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이 때 잘 나가던 나스닥은 2000년 6월에 소프트뱅크와 합작하여 일본 내 나스닥재팬을 설립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광섬유 통신이 가정과 회사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IT벤처들은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당시 코스닥 시장은 1998년 말 시가총액 7.9조 원 수준이었으나 1999년 말에는 급격하게 늘어나 무려 98.7조 원 수준으로 크게 성장하고 코스닥 지수는 240%, 무려 2배 이상 상승합니다.

코스닥 버블이 붕괴하다

이렇게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보여준 코스닥 시장은 2000년 3월 10일 역대 지수 최고치인 2834.3 포인트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끝으로 코스닥 시장은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크게 붕괴합니다. 실제로 2000년 3월 정점을 찍었던 코스닥 지수는 이후 급격한 폭락을 경험하며 그 해 말에는 무려 525.8 포인트로 80% 가량 큰 하락폭을 기록합니다. 이를 두고 당시 사회문제까지 발생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낙폭이었습니다.

포스트잇 그래프 사진

이렇게 코스닥 시장이 주춤하게 된 것을 넘어 버블이 붕괴하게 된 이유에는 역시 나스닥 시장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나스닥 시장도 대세 상승 이후 기업들의 수익성 창출에 대한 의문, 버블에 대한 회의, 기업들의 투자등급 하향 조정 등이 겹치면서 몰락했습니다.

이 역시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당시 언급되던 인터넷 전화 등은 근본적으로 수익성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묻지마 투자'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1년만에 폭락을 경험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나스닥 버블 이후 IT 기업들의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돼지저금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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