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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의 탄생의 초석, 베르너 보고서의 태동
(2022년 09월 기사)

유로화의 탄생의 초석, 베르너 보고서의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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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09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안녕하세요. 지난 8월에는 집중 호우로 많은 분들이 수해를 겪었습니다. 수해로 고통받으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럽지불동맹에 이어 베르너 보고서에 대해 다루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특히 이번 글에서 살펴볼 베르너 보고서는 오늘날의 유로화 탄생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럽 통합의 지지자, 피에르 베르너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베르너 보고서의 베르너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바로 룩셈부르크의 총리였던 피에르 베르너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원래 피에르 베르너는 룩셈부르크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룩셈부르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은행가로 전업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소국인 룩셈부르크는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고,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너는 브렌트우즈 체제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설립 계기가 된 브렌트우즈 회의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유럽 내에서도 피에르 베르너는 유럽 통합의 선도자였던 장 모네, 로베르 쉬망 등과 친분을 유지했고 당연히 이들이 추진했던 유럽 통합의 강력한 지지자였습니다.
피에르 베르너는 유럽 통합을 위해 헌신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실제로 1965년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은 유럽 통합 정책에 불만을 품고 프랑스가 다른 유럽 국가들과 회의하는 것을 중단하는 '빈 의자' 정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피에르 베르너는 샤를 드골 대통령을 설득해 프랑스가 유럽의 일원으로 다시 참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경제를 표현한 사진
여기서 잠깐, 그의 조국인 룩셈부르크 이야기를 해볼까요? 현재의 룩셈부르크는 유럽 금융 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하지만, 이전에는 철강으로 유명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지리를 보면 평지보다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때문에 몇 세기 전 룩셈부르크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알자스 로렌 지방의 철을 가져와 가공하는 철광업이 부흥하면서 가난을 극복하고 당시 세계에서 제일가는 철강 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룩셈부르크는 철강 대국이라기보다는 유럽 금융 산업의 메카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금융업 때문에 세계 1위의 1인당 GDP를 자랑합니다. 오히려 과거에 주력이었던 철강 산업은 철광석의 고갈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의 철강 산업과의 경쟁으로 과거보다는 명성이 줄어든 편입니다.
룩셈부르크가 유럽 금융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피에르 베르너와 같은 인물이 있었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실제로 피에르 베르너는 총리로 재임하던 1970년대 후반 철광업이 사양 산업에 접어들자, 적극적으로 금융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로마 조약과 베르너 보고서의 등장

한편, 유럽에서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유럽석탄철강 공동체(ECSC)를 시작으로 1957년 3월, 로마조약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EC)가 탄생했습니다. 서독,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6개 국가들이 참여한 이 공동체는 기존 석탄, 철강 공동 사용에 만족하지 않고 회원국들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등 경제 통합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화폐 통합에 대한 이슈도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경제공동체는 피에르 베르너를 의장으로 한 경제통화동맹 특별위원회가 구성됩니다.
이 때 경제위원회가 구성된 이유는 화폐 통합뿐만 아니라 1960년대 후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프랑스와 서독의 통화 갈등도 한 몫 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서독의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서독 마르크가 프랑스의 프랑보다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서독의 경상수지는 높고 프랑스의 경상수지는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유로통합, 독일 프랑스 깃발 사진
문제는 서독의 마르크화가 강해지고 프랑스의 프랑이 약세를 띠니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럽공동체(EC)에 속한 국가들은 유럽 농업의 진흥을 위해 공동농업정책(CAP)를 유지하고 농산물 공동 가격제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CAP 운영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유럽 농산물의 가격 안정이었는데 프랑 가치가 절하되고 마르크화의 가치가 절상되면서, 프랑스의 농산품 가격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즉 독일의 마르크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마르크화를 보유한 서독 국민들은 프랑스 농산품을 적극적으로 더 많이 구매할 수 있게 됐고, 프랑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프랑스 국민들은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는 것과 동시에 먹거리 물가가 급등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즉, 경상 수지 불균형으로 인한 통화가치 변동으로 농산물 공동 가격제가 깨져버리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통화 갈등은 양 국가의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고, EC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통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과연 그 결과물은 무엇일까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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