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바로가기 본문 내용 바로가기

미래에셋증권

장 모네, 유럽 통합의 조력자를 만나다
(2021년 10월 기사)

장 모네, 유럽 통합의 조력자를 만나다
메인 이미지 보이기
  • 처음 >
  • 투자 이야기 >
  • 쉽고 재미있는 투자의 역사
    (2021년 10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이번호에서는 지난호에 이어서 유럽 통합을 위해 움직인 장 모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지난호에서 장 모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전쟁이 끝나고 그는 유럽 통합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모네, 알제리에서 유럽의 미래를 생각하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전역을 끔찍한 폐허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군인들만의 싸움이 아닌 한 국가의 모든 것을 동원하는 총력전 형태로 치뤄졌기에 전 유럽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파괴된 유럽을 복구하기 위해서 전후 복구 계획이 각 국가에서 수립되기 시작했는데, 프랑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장 모네는 전쟁이 끝날 것을 예상하고 프랑스, 아니 유럽의 복구를 위한 자신만의 계획을 생각해두고 있었습니다.
1943년, 전쟁이 계속되던 와중 모네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탁으로 프랑스 독립 세력을 중재하기 위해 알제리로 향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이후, 프랑스의 잔존 독립 세력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독일에 대해 저항과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고 있던 드골 장군을 따르는 분파와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아프리카 및 서아프리카 지역의 총사령관이었던 지로 장군을 따르는 파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두 세력은 같이 독일을 적대하고 있었지만 약간씩 차이가 있었는데 드골 장군이 이끄는 저항세력은 괴뢰정부로 수립된 비시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반면, 지로 장군이 이끄는 저항세력은 당시 루스벨트 정권과 비슷하게 비시 정권을 일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알제리 전경 사진
두 독립 세력이 100% 화합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는데, 분열된 독립 세력을 화합시키기 위한 적임자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장 모네를 적임자로 선택했습니다. 장 모네는 루스벨트의 청을 받아들여 두 세력을 화합시키는 데 힘썼고, 자유프랑스연합이 탄생하게 됩니다.
알제리에 머무는 동안 장 모네는 유럽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패배는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고 보았고, 이후 유럽에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유럽이 각 개별 국가를 넘어선 연방 체제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모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평등과 화합이었습니다. 모네는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1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국이었던 독일에 가해진 가혹하고 부당한 대우 등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이 관리했던 자르 분지 지역에서의 실패 경험도 그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1944년, 자유프랑스연합의 실세로 거듭나고 있던 드골 장군과 만난 자리에서 모네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독일과 프랑스가 협력하는 것이 프랑스의 평화, 더 나아가 유럽 전체에 이익이 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드골 장군은 당시 많은 프랑스인들처럼 독일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무력화되어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네의 제안은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모네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계속 정리해 나갑니다.

다시 자르로 돌아가 조력자를 만나다

1945년 독일이 패전하자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은 독일을 4등분해서 통치하기로 합니다. 특히 프랑스는 이전에도 지배하려고 했던 자르 분지 지역을 요구, 원래 미국이 통치하기로 한 자르 지역을 넘겨받게 됩니다.
프랑스는 자르 분지를 '자르 보호령'으로 삼고 유럽평의회에 자르 보호령을 서독과 따로 가입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등 1차 세계대전 이후와 마찬가지의 정책을 취합니다. 당연히 프랑스의 조치는 이전처럼 자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2차세계대전 폐허 전경 사진
프랑스의 움직임에 대해 장 모네는 또 다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가혹한 처사가 나치 정권을 탄생시켰듯, 또 다시 프랑스의 강압적인 정책이 오히려 프랑스에 독이 되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 입장에서는 풍부한 원자재를 갖춘 자르 지역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유리했지만, 독일과 프랑스, 아니 전 유럽을 아우르는 입장에서는 이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모네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장 모네는 알제리에서와 달리 자신의 계획에 공감하고 지지해줄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은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으로 재임하고 있던 로베르 쉬망이었습니다. 둘의 협력은 유럽연합, 유럽경제공동체의 시작을 알리는 '쉬망선언'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장 모네의 조력자이자 유럽 연합의 기초를 다진 로베르 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