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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구제금융을 둘러싼 논란
(2020년 03월 기사)

2008년 구제금융을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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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03월 기사)
기고: IT기획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2008년 9월, AIG에 대한 850억 달러 구제금융 집행은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이를 앞장서서 주도한 것이 벤 버냉키 의장이 이끌던 FRB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당시 분위기를 살펴보면서 그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구제금융을 둘러싼 워싱턴 정가의 논란

이미 금융위기의 전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부시 행정부와 집권 여당인 공화당은 구제금융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실제로 2008년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구제금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공화당은 전당대회 정강에 "우리는 민간기업에 대한 구제금융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전당대회 정강과는 다르게 부시 행정부나 FRB는 계속되는 금융위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우선 미국의 대표적인 모기지 회사이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한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을 인수해서 사실상 국유화했고, 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300억 달러를 대출해주기도 했습니다.
달러 위에 시계가 있는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먼브라더스는 FRB의 지원 없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리먼브라더스에 대해 금전적인 지원이 없었을 뿐, 부시 행정부는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할 만한 금융회사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고, 결국 파산신청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AIG에 대해서는 긴급 자금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에 "왜 리먼브라더스는 되고, AIG는 안되냐?"라는 논란과 더 나아가 "월가의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가 미국 정가의 논란으로 떠오릅니다. 특히 2008년 11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러한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AIG는 왜 논란이 됐나

특히 이번 구제금융이 논란이 됐던 이유는 AIG가 FRB의 감독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AIG는 보험사인데 FRB 등의 주요 감독 대상이 아닙니다. 때문에 연방 정부 차원이 아니라 주 정부에서 관리하는 회사입니다.
때문에 버냉키 의장과 부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감독 대상이 아닌 AIG에 대해 구제금융을 지원한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학계와 금융권,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금융 관련 그림
당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시장에 주는 영향'이었습니다. 베어스턴스가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FRB는 베어스턴스의 파산을 그대로 두면 자본 시장에 큰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300억 달러 대출을 집행했습니다. AIG 역시 금융 시장에 줄 파장과 보험 고객들에게 미칠 영향을 근거로 긴급 구제금융을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베어스턴스보다 규모가 큰 리먼브라더스나 메릴린치에게는 구제금융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앞에 설명했듯이 부시 행정부가 해당 회사들의 생존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때문에 '정실자본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뒤따랐고, 이는 계속 논란으로 떠오릅니다.

구제금융법안 통과를 위한 부시 행정부의 노력

어쨌든 구제금융이 시장경제의 원칙에는 본질적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으면서 대선을 앞둔 미국 정가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우선 행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안 통과를 위해 부시 대통령이 2008년 9월 24일 직접 대국민 TV 연설을 진행합니다.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구제금융 법안이 시장 경제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비정상'적인 상황인 만큼 구제금융법안에 대해 이해해달라는 양해를 구합니다.
연이어 9월 25일에는 공화당의 대선주자인 존 매케인 의원과 민주당 대선주자 버락 오바마 의원,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 등과 만나 구제금융법안 합의 도출을 시도합니다. 이후 27일에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이번 구제금융이 월 스트리트가 아니라 소상공인과 서민들인 ‘메인 스트리트’를 구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합니다.
백악관 전경 사진
부시 대통령의 노력에 미국 전역은 구제금융에 대한 찬반으로 나뉘게 됩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장이자 대표적인 가치투자가인 워런 버핏의 경우에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과 관련한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을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 이후 상황'에 비유하며 신속한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헤지펀드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의 경우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보낸 기고문에 구제금융이 결국 시장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노력에 9월 말, 낸시 펠로시 의원도 몇 가지 조건을 다는 것을 전제로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추인하기로 했고 구제금융법안이 명문화돼 표결에 들어가게 됩니다.

205 Vs 228 부결된 구제금융법안

하지만 2008년 9월 30일, 부시 대통령의 기대와는 다르게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은 찬성 205표, 반대 228표로 하원에서 부결되고 맙니다.
충격적인 것은 부시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인 공화당이 대규모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입니다. 공화당에서는 전체 198명 중 65명만 찬성했고 133명이 반대했습니다. 즉 여당인 공화당의 반대에 민주당 이탈표가 힘을 더해 하원 부결이 이뤄진 셈입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부시 대통령이 임기를 몇 달 남겨두지 않아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었던 이유가 컸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구제금융 법안에 대한 악화된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의원들이 구제금융 법안에 찬성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지지자들의 이메일과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물론 이번 합의를 주도했던 야당인 민주당 지도부도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낸시 펠로시 의장은 "오늘 일어난 일은 참을 수 없다"며 "우리에게 여전히 위기가 남아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제금융 부결을 두고 다우지수가 777포인트 이상 하락하는 등 구제금융법안 결렬에 대한 위기의식과 실망이 나타납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구제금융법안의 결렬은 세계 경제와 미국 정치를 블랙홀로 몰고 갔습니다. 과연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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